[데스크 칼럼]지진무풍지대의 과신
[데스크 칼럼]지진무풍지대의 과신
  • 이범영 부국장
  • 승인 2011.03.17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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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 방사능 유출, 일본의 필사적 결단만 남은 채 원전에 남아 뒤처리를 감당하는 50여명의 ‘가미가제’에 일본의 운명이 결정날 것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세계를 경악케 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의 붕괴가 방사능 유출과 함께 전 일본인을 공포로 몰아가는 현실뒤엔 일본정부의 안이한 대책이 한 몫을 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동북부를 제외한 일본 전역의 국민들은 오직 방송에만 정보를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처음부터 정부가 방사능 유출을 걱정하지 말라고 해왔으며 상황이 심각하게 전개되지만 이를 알리는데 인색하면서 심각성을 숨겨왔고 또 대응에 무기력했다는 비판을 자국민에게 듣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은 국민의 안위를 책임진 우리 정부의 입장과도 다를 바 없다. 그동안 지진에 대해서 만큼은 안전지대라며 안정성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사회 전반 모든 분야에서 지진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하지만 일본의 강력한 지진을 계기로 우리 역시 지진발생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고 그동안 우리가 지진대비에 너무 소홀해 왔으며 또 여전히 지진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지진무풍지대라는 과신분위기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지진대비에 소홀히 해 왔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서울을 포함 전국 8개 시·도교육청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학교시설 내진보강 사업계획’을 무시하고 올해 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거나 대폭 삭감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국회가 이론 대지진을 계기로 내진설계의 의무화와 지진대비를 촉구하는 과정에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은 교과부 지침에 따라 자체적으로 오는 2014년까지 ‘중장기 학교시설 내진보강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그 결과 절반에서 지진대비를 아예 무시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지진대비를 해야하는 대상이 지난해 내진성능 평가결과에서 ‘대규모 피해’가능성이 있는 학교로 분류된 것이다.
당초 교과부는 지난해 당시 보고서에서 계획대로 추진하면 13.2% 수준이었던 전국 초·중·고교 건물에 대한 내진보강 비율이 오는 2014년 18.7%까지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이웃 중국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지진에 대비하고자 세워진 이 계획은 2008년 5월 중국 쓰촨성 대지진 당시 학교 7000여채가 무너져 막대한 인명피해가 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당시 교과부는 2009년 말 내진설계가 돼 있어야 할 학교 건물 1만1293개 중 86.3%의 내진설계가 미비했고 그중 절반 정도는 ‘대규모 피해’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인천·광주·전북·경기·전남·충북·경남교육청이 내진보강 예산을 책정하지 않았거나 대폭 삭감했다.
문제는 예산삭감의 이유에 있다.
지진항목을 줄인 해당 지자체들은 한결같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들고 있다. 지진대비에 대한 불감증은 그러나 이들 예산을 삭감하고 대신 지진대비용 자금을 직원들의 성과금으로 지급했다는 것이다.
뿐 만 아니라 일각에서는 이들 교육청의 관련 사업비가 삭감된 것은 무상급식 등 각종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직선 교육감들이 예산을 공약 사업에 우선 배치하다 보니 빚어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의 경악보다 더 무서운 사고방식을 우리가 그대로 가진 이상 이 땅의 지진에 대한 안전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 상태이다.
일선 교육지자체들이 재해대책에 사용할 수천억원을 자녀들의 생명을 담보로 이를 성과급잔치로 돌려 사용했다는 점에서 우리의 인식이 충격적이다.
현재 일본 대지진은 동북부에 9.0의 초강도 지진에 이어 진도 6의 강진이 도쿄를 포함 아래 위 내륙에서까지 연달아 지속되면서 일본 전역을 불안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과거 신라시대에도 진도 6의 지진기록이 있고 한반도 역시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면 이같은 어이없는 발상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싸움을 말리는 시어머니가 더 얄밉다는 속담은 결코 지자체도 문제지만 이를 포괄하는 정부의 방관책임도 크다. 정부 역시 지자체와 같은 인식을 하지 않았다면 예산의 우선순위에서 지진을 아예 빼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결코 발생치 않았을 것이다.
지진무풍을 과신하는 인식을 즉시 바꾸지 않는다면 일본과도 같은 재앙을 결코 비켜갈 수 없을 것이라는 교훈을 즉시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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