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 일 칼 럼]김정일은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났다
[충 일 칼 럼]김정일은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났다
  •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
  • 승인 2011.12.18 1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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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혼이 담긴 영지(靈地)이자 신성한 성지(聖地)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지만, 홍익인간이라는 단군의 개국신화가 태동한 곳이기에 백두산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곳이다.
백두산 주변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높은 2750m짜리 봉우리를 북한에서는 ‘장군봉’이라고 부른다. 분단 이후 우리에게는 금단의 땅이 되어 우리야 각각의 봉우리들을 달리 부르는 명칭도 갖고 있지 않지만 북한에서는 김정일 ‘장군’이 태어난 곳이어서 그 봉우리를 ‘장군봉’이라고 한단다.
그런 장군봉도 자연재해에는 속수무책인지, 지난해 북한에 홍수가 났을 때 장군봉 꼭대기 한 쪽 면이 상당 부분 부서져 내렸다. 모래비가 내리며 폭발했다는 백두산은 모래와 자갈로 뒤엉켜 있어 작은 비에도 굉음을 내며 곧잘 산사태가 나곤 한다.
그런데 김정일이 진짜 백두산 장군봉 아래 밀영에서 태어났을까?
지난주 사할린 한인들의 자료를 찾으러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 갔었다.
20세기 중반까지도 극동사령부가 하바로프스크에 있었고, 시베리아는 물론이고 사할린과 연해주 등에 거주하던 우리 한인들에 관한 기록 가운데 중요한 문서는 모두 하바로프스크로 옮겨졌었기 때문에 귀중한 자료를 상당히 많이 열람할 수 있었다. 그 얘기는 훗날 다시 하게 될 것이고, 문제는 그곳에서 놀라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직도 하바로프스크에는 수많은 우리 민족이 살고 있다.
이름하여 까레이스키.
우리 선조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 정도로 19세기 말부터 지금까지 까레이스키라 불리는 고려인들이 상당한 역할을 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김정일이 그곳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났다’고 말한다. 더 놀라운 것은 김정일의 형이 그곳에서 죽었으며, 그의 묘도 있다는 사실이다.
다만 그들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말을 아끼고 있을 뿐이다.
오랜 세월 러시아에서 소련으로, 또 다시 러시아로 변모하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 나라 없는 설움은 물론, 소련과 외교관계가 없었던 대한민국 보다는 북한과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면서 지금도 북한에 친인척들을 두고 있는 그들로써는 가능하면 입을 닫고 사는 것이 편했으리라. 아니 그것이 생존전략이기도 했으리라. 이 모든 것이 신산했던 우리 역사의 한 조각이거늘, 이제 와서 그 누구를 탓하겠는가? 어느 날 갑자기 조국이 두 개가 되어 버린 현실이 그들에겐 얼마나 당혹스러웠을지, 그 누가 감히 짐작인들 하겠는가?
입이 유달리 무거워 보이는 분에게 어렵사리 그곳 안내를 부탁했다.
이런저런 질문에도 그저 웃기만 할 뿐 선뜻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도 그분은 이미 여러 번 가 본 경험이 있는 듯 네비게이션도 끊어져 버린, 끝도 없는 눈길을 운전기사에게 손으로 방향을 가리켜 가며 우리를 안내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북동쪽으로 85Km를 달려가자 넓다란 아무르강 옆으로 제 몸에 하얗게 상처를 내며 수도 없이 촘촘히 서 있는 자작나무 숲 속 한 쪽 편에 뱌트스코예라는 작은 마을이 나왔다. 김일성이 대대장으로 근무했다던 88여단이 있던 곳.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 운동을 어디서 얼마나 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허나 적어도 1940년 이후에는 이곳 뱌트스코예에서 소련군 대위로 근무했음은 확실하다. 88여단이 있던 자리는 철조망을 둘러친 채 남아 있고, 1990년까지 체육인들 휴양소로 쓰였었다는 여단본부건물은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완벽한 모습으로 철창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당시의 김일성과 그 가족들을 직접 보고 말을 나눴던 증인들이 지금도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80이 훨씬 넘어 거동이 불편하긴 하지만, 이들은 한결같이 ‘유라’라고 불렸던 김정일과 김일성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정일보다 1년 빨리, 1941년에 태어난 그의 형 ‘슈라’는 북한에 들어가서 죽은 것이 아니라 이곳 아무르강에 빠져 죽었다며, 그의 무덤까지 알려주었다. 2009년 가을, 슈라의 무덤을 재정비할 때는 동네사람들까지 모조리 불러다가 잔치를 했는데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리는데도 학생들을 곱게 단장시켜 춤까지 추게 했다는 것이다. 또 올 봄에는 러시아에는 없는 봉분까지 만들었단다. 과연 30cm정도 쌓인 눈을 헤치고 보니, 봉분이 나왔다. 봉분은 한국에만 있는 독특한 묘지형태다.
누가, 왜, 김정일의 형, 슈라의 묘를 단장했을까? 왜? 누가?
우리가 그 묘를 찾았을 때 여러 사람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꽃도 두 개나 있었고, 꽤나 비싼 중국술도 3개나 눈을 뒤집어 쓴 채 꽂혀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북한인지 남한인지는 몰라도 카레이스키들이 묘지에 자주 찾아온다고 말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태어난 김정일을 민족의 영지(靈地) 백두산에서 태어났다며 봉우리 이름까지 ‘장군봉’이라 칭하는데, 이곳엔 누가 찾아오는 것일까? 김정일 형의 묘는 왜 대대적으로 새 단장을 했을까? 김정일의 수명이 다 해 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인지상정(人之常情),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참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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