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뇌물의 차이
[충일논단] 뇌물의 차이
  • 서중권 편집이사
  • 승인 2012.05.13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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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종 때 김안로(金安老 1481∼1537)는 오랫동안 정승자리에 앉아서 뇌물을 탐닉했다.
그는 뇌물 규모에 따라 얼굴빛이 달라질 정도로 밝혔다고 전해지고 있다.
충청병사 황침(黃琛)이 그 김안로에게 언젠가 참깨 20말을 바쳤다. 그리고 임기를 마친 다음에 인사를 하러 찾아갔다.
하지만 첫새벽에 명함을 들여보냈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그렇다고 짜증을 내며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엉거주춤 대기하다 보니 해가 높이 솟고 있었다.
황침이 머뭇거리는 사이에 충청수사 임천손(林千孫)이 와서 명함을 들이 밀었다. 그러자 김안로가 반가운 듯 달려 나와서 직접 맞아들이고 있었다. 황침도 엉겁결에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김안로는 임천손과 둘이서만 대화를 나눴다.
황침에게는 말 한마디도 건네지 않았다.
나중에 황침이 임천손에게 물었다.
“김안로가 그대만 친근하게 대해준 이유가 뭔가”
임천손은 대답을 피하려고 했다. 황침이 재촉하자 마지못해 털어놨다.
“김안로가 나에게 혼숫감을 요구했었지. 그래서 커다란 배를 한 척 만들어서 혼숫감을 가득 실은 다음에 그 배까지 통째로 상납한 일이 있었어. 아마도 그 덕분일 것이야”
황침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바친 참깨 20말은 큰 바다에 던진 셈이었군”
황침은 나름대로 귀한 참깨를 20말이나 바쳤지만 김안로에게는 별것도 아니었다. 참깨 따위는 뇌물 축에도 들지 못했다. 황침은 어렵게 깨달을 수 있었다. 뇌물에도 종류가 있었다. ‘큰 뇌물’과 ‘작은 뇌물’이었다. ‘송와잡설(松窩雜說)’에 나오는 얘기다.

▶뇌물은 언젠가는 들통
비슷한 일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소위 파이시티 게이트에서 드러난 돈은 ‘억’이었다. 대통령 측근에 ‘최’를 붙인 ‘최측근’은 ‘억’을 즐기고 있었다. 전달 과정에서 ‘배달 사고’를 냈다는 돈에는 그 ‘억’에 ‘동그라미(0)’ 하나가 더 붙고 있었다. 10억이었다.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받았다는 돈만 단위가 ‘천’으로 떨어졌다.
납품 비리를 저질렀다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에게서도 ‘억’ 소리가 들렸다. 교육감까지 품위를 팽개치고 ‘억’이었다.
여기에 비하면, 마약수사대 경찰관이 피의자에게 일부러 돈을 빌려주고 이자로 위장해서 받았다는 돈은 ‘푼돈’이었다. ‘몇 천’에 불과했다. 그것도 30개월에 걸쳐서 받았다고 했으니 황침의 참깨와 비교할 만한 ‘하찮은 돈’이었다.
그래도 ‘푼돈’을 모으면 ‘목돈’이라고 했다. ‘룸살롱 황제’의 돈을 받은 경찰관들이 줄줄이 망신을 샀는데도, 또 어떤 경찰관들은 ‘사채 왕(王)’의 리스트에 오르고 있었다. 대한민국에는 부지런한(?) 경찰관이 적지 않았다.
명나라 때 임금의 ‘측근’이었던 환관이 뇌물을 삼켰다가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배신감을 느낀 임금이 환관의 집을 뒤져보라고 명령했다. 가택 수색 결과, 비밀 장부 한 권을 찾아낼 수 있었다. 장부에는 ‘황미(黃米) 몇 백 섬, 백미(白米) 몇 천 섬’ 등의 글이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보고를 받은 임금이 “도대체 황미, 백미가 무슨 뜻인가” 물었다. 신하들이 멋쩍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황미는 금(金), 백미는 은(銀)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뇌물은 황미, 작은 뇌물은 백미였다. 그러고도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재간은 없었다. 청나라에게 넘겨줘야 했다. 정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권 말기가 되니 터졌다하면 뇌물사건이다. 정말 현정권의 끝이 다다른 모양이다. 또 어떤 뇌물사건이 터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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