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갑을논란 적정한 통제장치 마련이 아쉽다
[충일논단] 갑을논란 적정한 통제장치 마련이 아쉽다
  • 이범영 부국장 당진 주재
  • 승인 2013.05.08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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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식품회사 횡포에 대한 비리와 불법이 고발돼 사회적 파장이 커진 가운데 업주(갑)와 대리점(을)간 공방이 치열해 지고 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됐는가하는 도탄의 목소리도 나온다.
검찰이 고발된 이 사건의 수사를 본격화하면서 갑의 임직원 수십명이 줄줄이 소환돼 그들에게 적용된 만행(?)에 대한 알찬 속살들이 줄줄이 드러날 전망이다.
하지만 갑이 ‘모르쇠’로 나오고 있고 이에따른 반사회적 감정이 폭발하면서 이 업체에 대한 불감을 경고하는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최근 잇따른 대기업 상무의 라면을 빌미로 한 승무원 폭행, 베이커리 업체 회장의 지갑 이용 호텔 직원 폭행에 이어 남양유업 영업직원의 막말 사건 등 비뚤어진 ‘갑을(甲乙) 관계’의 폐해가 잇따르자 ‘을’들이 참아왔던 울분을 토해내고 있다.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는 ‘갑의 횡포’를 고발하고 비난하는 글이 연일 폭주하고 해당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가시화하는 등 파문이 확산하는 모양새다.
“이번 기회에 갑에게도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울분 어린 목소리에서 ‘특정 개인·기업 죽이기’ 식의 비난보다는 비뚤어진 ‘갑을 문화’와 왜곡된 영업 관행 등을 바로잡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논란이 뜨겁다.
이런 움직임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재벌·대기업의 불공정·횡포 피해사례 발표회’를 열어 그동안 묻혀 있던 피해자들의 생생한 사례를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이 자리에서는 “자식뻘인 영업 담당에게 욕설과 협박, 갈취에 시달려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서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거나 “명절 때마다 떡값과 지점 회식비 등 각종 명목의 돈을 요구받았다.”는 등 남양유업 대리점 주인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CJ 대한통운이 일부 지역에서 화물운송기사를 상대로 수수료 폭리를 취했다는 주장과 크라운베이커리가 주문제도를 일방적으로 변경해 가맹점에 손해를 끼쳤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사례 발표회의 증언을 소개한 기사에는 ‘갑의 횡포’를 비난하는 댓글이 적게는 수십개에서 많게는 수백 개씩 달렸고 누리꾼들은 해당 기사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전파했다.
이날도 역시 인터넷 게시판 등에는 ‘을의 고통’을 호소하고 소개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며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비판하는 여론이 식지 않고 있다.
불매운동은 회원수가 1만5000여 명에 달하는 CU, GS25, 세븐일레븐, 바이더웨이 등 편의점주들의 모임인 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까지 나서서 ‘을’의 입장으로 비통함을 공감한다며 남양유업 제품에 대한 판매중단을 선언했다.
이 단체가 불매운동을 공식 선언한 만큼 남양유업이 받을 타격도 적지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남양유업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인 공정위는 이날 서울우유와 한국야쿠르트, 매일유업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 유업계의 ‘밀어내기’ 실태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불매운동이 시작되고 파문이 커지자 대기업들은 긴장하며 자사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봐 몸을 사리는 모습이다.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협력업체와의 상생·소통 등을 주제로 임직원 교육을 했고, 한국전력공사는 ‘권위주의 타파 14계명’에 반말과 하대를 하지 말자는 내용 등을 담았다.
지난달 말 여직원의 투신자살 사건이 발생한 롯데백화점은 매장 관리자 교육 과정에 ‘갑을 관계’를 되돌아보도록 하는 강의를 이달 도입했고 포스코는 오는 22일 회장 주재의 임원 워크숍에서 반성의 뜻을 담아 윤리실천 다짐대회를 열 예정이다.
SNS가 일반화된 사회, 그러나 통제장치가 없는 우리 사회가 이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피해양산과 함께 새로운 걱정거리를 만들고 있는 게 문제다.
정작 문제는 이처럼 폭발하는 막무가내식 ‘을의 분노’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통제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잇단 사건으로 왜곡된 갑을 관계에 대한 사회적 환기는 이뤄졌지만, 그와 함께 두드러진 당사자에 대한 신상 털기 등 개인에 대한 지나친 공격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음성파일이 유포돼 여론의 뭇매를 맞은 남양유업 전 영업사원 이모 씨는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며 “백번 잘못했다.”면서도 “집안이 망했다. 파일이 공개되고 잠도 못잘 정도로 괴롭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도 주목해볼 만하다.
이씨는 자신의 폭언 파일이 다음 아고라 등의 인터넷에 마구잡이로 유포되고 있고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이를 이용하고 있다면서 서울 지방경찰청에 진정서를 내 유포 경위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비행기 여승무원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포스코에너지 임원은 사표를 제출했고, 호텔 직원 폭행사건의 장본인인 프라임 베이커리 회장은 누리꾼의 분노가 확산하자 결국 제빵업체의 문을 닫았다.
따지고 보면 갑을 모두의 잘잘못이 있고 이로인한 선의의 피해자가 사회적 통제장치 없이 무차별로 징벌당하는 그런 사회가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온 것이 문제다.
‘갑의 횡포’에 대한 지적이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왜곡된 갑을 관계는 상위 1%의 ‘수퍼갑’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일상적인 현상이라는 점에서 특정인에 대한 공격보다는 사회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남양유업 사태 이후 편의점주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제품 불매운동을 보는 시각도 엇갈린다.
옹호하는 쪽은 자본 권력의 반(反)사회적 행위가 도를 넘은 만큼 불매운동과 같은 강력한 경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불매운동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즉자(卽自)적인 반응으로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갑’으로 불리는 업체 직원을 모두 ‘악질’로 볼 근거는 없고, 이들도 결국 사용자-노동자라는 틀 안에서 하나의 ‘을’일 뿐이지만 불매운동으로 업체가 타격받으면 무고한 ‘을’에게까지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불매운동에 나선 점주들이나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도 이런 지적을 모르지는 않는다. 남양유업 등 관련된 업체들이 진정성을 담아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갑질’에 대한 강한 거부감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갑을간 충돌하는 현실에 통제장치가 없는 이런 살벌한 사회가 된 데에는 반사회적 행위를 계속하는 기업과 이를 제지할 제도 마련에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는 국회와 정부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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