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조세피난처와 쥐덫
[충일논단] 조세피난처와 쥐덫
  • 이범영 부국장 당진 주재
  • 승인 2013.05.2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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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는 알곡을 훔치고 나쁜 유해병원균을 옮긴다 해서 유해동물로 분류돼 혐오동물로 인식되는 생물이다. 이런 쥐를 잡기 위해 사람들은 쥐덫을 놓는데 이는 인간에 빌붙어 양식을 훔쳐먹고 사람을 위협하는 질병을 퍼트리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기업을 하는 수백명의 주변사람들이 몰래 가짜 회사를 만들어 놓고 세금을 피하면서 부를 축적해 오다 어느 매체에 의해 명단이 공개돼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부상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들 면면을 들여다 보면 유명기업인과 가족들이 대부분이다. 독립 인터넷 언론 뉴스타파는 22일 “전 경총 회장인 이수영 OCI 회장 부부를 포함해 한국인 245명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유령 법인)를 설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또 이 회장 부부 이외에 조중건 전 대한항공[003490] 부회장의 부인 이영학 씨, 그리고 조욱래 DSDL(옛 동성개발) 회장과 장남 조현강씨도 페이퍼컴퍼니 설립자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국세청은 페이퍼컴퍼니 설립 자체가 불법은 아닌 만큼 이들 회사가 탈세와 연관됐는지 여부에 대해 정밀 검토를 거쳐 탈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의심되면 세무조사를 통해 과태료 부과, 추징 등 강력 대응하겠다고 한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사람들이 벌인 페이퍼 컴퍼니 설립이 불법은 아니더라도 이를 고운 시선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현대판 보물섬으로 불리는 조세피난처의 핵심은 낮은 세율과 비밀주의다. 소득세와 법인세를 물리지 않거나 아주 낮은 세율로 과세하고 이런 혜택을 받은 이들이 누구인지 절대로 밝히지 않는다.
바하마, 버뮤다, 케이맨 제도 등 조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들이 ‘조세천국(Tax Paradise)’, 홍콩, 파나마, 라이베리아 등 극히 낮은 세율을 부과하는 국가들은 ‘조세 피난처(Tax Shelter)’로 부른다.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스위스 등은 비과세는 아니지만 특정 기업이나 사업활동에 세금 상 특혜를 주는 ‘조세 휴양지(Tax Resort)’다.
역외 탈세는 대부분 개인이 아닌 기업을 통해 이뤄진다. 철저하게 금융 비밀주의를 보장하는 조세피난처에 특수목적법인(SPC) 등을 세운 뒤 자금을 반출시켜 세금과 금융규제를 효율적으로 피하기 위해서다.
이날 폭로된 기자회견은 이런 비밀이 벗겨진 충격 그 자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9년 주요 20개국(G20)의 금융정상회의에 맞춰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조세피난처에 숨겨진 자산은 최소 1조7000억 달러에서 최대 11조5000억 달러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세계가 금융위기의 여파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이 규모가 더욱 커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부자들이 조세당국과 숨바꼭질을 해온 역사는 뿌리 깊다.
고대 그리스에서 무역상들은 외국산 물품에 부과되는 세금을 피하려고 주변 섬을 이용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유럽의 각국 정부가 전쟁비용을 마련하고자 급격한 증세를 하면서 조세피난처가 본격적인 탈세의 온상이 됐다.
국제화 흐름에 맞물려 세금 추적을 피하는 수법도 나날이 진화하면서 국제사회의 공조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OECD는 2000년 파나마,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등 35개 국을 교역 및 투자위험 지역인 ‘비협조적 조세피난처’ 명단에 올려 탈세와의 전쟁에 나섰다. 2009년에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케이맨 제도, 제도 등 42개 국을 명단에 포함시켰다.
비협조적 조세피난처 지정에서 해제되려면 OECD 정보교환기준을 수용해야 한다.
OECD 기준은 조세정보뿐 아니라 금융정보도 교환 대상으로 한다. 정보 요청을 받은 국가는 해당 정보가 조세 목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보 제공을 거절할 수 없도록 했다. 각국은 이러한 정보교환 협정을 최소 12개국과 체결해야 한다.
최근에는 국제탐사언론인협회(ICIJ)가 버진아일랜드에 금융계좌를 보유한 전 세계 유명인과 페이퍼컴퍼니의 명단을 공개하며 각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 4월 워싱턴에 모인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들은 모든 금융당국(jurisdiction)이 ‘다자간 조세행정공조협약’에 가입할 것을 촉구했다.
이 협약은 역외 탈세를 막기 위한 대표적인 국제공조의 산물로, 가입 시 금융정보를 자동으로 교환할 수 있으며 현재 43개국이 서명했다. G20 회원국 중에선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만 가입하지 않았으며 한국은 작년 7월 가입했다.
발표된 250명의 페이퍼컴퍼니는 이들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한 것은 1995년부터 2009년에 걸쳐 있고 2000년대 중반에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으며 2007년 금융위기를 전후해 페이퍼컴퍼니 설립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실체가 드러난 조세피난처는 이제 국내에서 포탈과 축적과정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비밀주의가 벗겨진 이들의 인면수심 행위를 우리 국민이 어떤 시각으로 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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