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철도민영화의 요건이 있을까
[충일논단] 철도민영화의 요건이 있을까
  • 길상훈 부국장 공주 주재
  • 승인 2013.12.25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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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철도문제가 민영화를 둘러싸고 최장 파업을 갈아치우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파업으로 인한 피해도 사상 최대폭을 갱신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물러서지 않는 정부와 노조, 여야 정치권의 대립이 연말정국을 냉각시키면서 한국사회는 또 다른 이슈와의 갈등을 넘어서야 할 순간을 맞고 있다.
이번 파업은 공기관의 개혁과 맞물리면서 박근혜 정부 들어 공기업 개혁추진 정책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그런만큼 정부도 강경한 태도를 견지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반면 철도노조도 마찬가지다. KTX수서역을 새로 개설하면서 이곳을 운영하는 주체와 관련 코레일의 자회사 설립이 민영화를 위한 수순이라면서 이를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파업을 풀라며 ‘결코 민영화를 위한 것이 아니며 이는 철도운영의 경쟁을 위해 만들어지는 경영방법’이라는 정부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노사는 대화하지 않고 있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벌어진 강경대치로 국민들의 불편은 매우 심화되고 있다. 여론도 정부에게는 결코 유리하지 않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런 여론은 당초 정부가 예상했던 것과는 정반대 결과라는 점에서 앞으로 정부가 어떤 결론을 만들어 나갈 지가 주목을 끌 전망이다.
앞서 전국철도노조가 파업을 예고한 3일. 국토교통부는 “교섭 대상도, 파업 명분도 없다.”고 했다. 설마 쟁의행위(파업)를 하겠는가라는 낙관이다. 노조는 임금 인상과 같은 근로조건 개선이 아닌 ‘철도 민영화 반대’를 파업 목적으로 내걸었다. 설령 파업을 하더라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대응하면 여론이 노조에 등을 돌릴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사태가 길어지면 공권력으로 진압해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봤다.
국토부는 2009년의 추억을 떠올렸다. 당시 철도노조는 ‘귀족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정부와 코레일은 철도노조에 비타협 기조를 유지했다. 결국 노조는 9일 만에 백기투항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파업 전 “무조건적인 파업 철회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노조에 어떤 대가를 주지 않더라도 파업을 끝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정부 예상과 정반대다. 정부는 2009년 당시와 파업 쟁점이 다르다는 것을 간과했다. 4년 전 철도노조는 임금체계 조정에 반대하며 파업했다. 불법파업 논란이 일기도 전에 여론은 싸늘했다. 만성 적자를 내는 공기업의 노조가 ‘평균 연봉 5500만원이 적다’고 주장하는 데 대한 반감이 ‘귀족 노조의 투정’이라는 질타로 이어졌다.
이번 파업은 그때와 다르다. 노조는 ‘철도 민영화 반대’라는 공익 구호를 내세웠다. 법적으로는 불법파업이다. 그러나 ‘밥그릇 지키기’를 위한 파업으로는 비치진 않았다. 고려대 주현우(경영학) 씨가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 해제됐다.”고 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는 청년층의 지지를 끌어냈다. 정부의 의도와는 딴판으로 여론이 흐른 것이다.
외국의 민영화 사례는 어떨까. 일본은 1980년대에 민영화를 통한 철도 개혁으로 방향을 잡았다. 반대는 거셌다. 1985년 이에 반대하는 과격 세력이 도쿄 등 전국 8개 지역의 철도 통신용 케이블을 절단하면서 열차 운영이 대부분 중단됐다. 과격파 그룹은 철도 역사를 점거하고 화염병을 던질 정도로 극렬하게 저항했다. 노조 등은 사고가 빈발하고 철도 요금이 급등할 것이라며 주장했다.
하지만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총리는 1986년 중·참의원 선거에서 ‘철도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워 압승한 후 개혁을 단행했다. 이후 철도 요금은 소비세 인상에 따른 요금 인상 외에는 거의 오르지 않았다. 철도 여객 수송량은 25% 늘었다. 철도 회사들은 역사(驛舍)를 상업 시설로 개발하고 관광업에 진출하는 등 사업 다각화로 수익을 늘렸다. JR규슈는 매출의 60% 정도를 철도 이외 사업에서 얻고 있다. 사고 건수도 1988년 연간 900건에서 2005년 455건으로 줄었다.
새로운 정책이 도입될 경우 어느 것이 좋다, 나쁘다 한 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만큼 기존 것과 새 것이 모두 장단점을 골고루 갖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이 민영화를 통해 철도개혁을 성공했을 지라도 새 제도가 결코 유토피아를 꿈꾸는 ‘환상’은 아닌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지향하는 개혁은 목표가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굳이 새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면 절출방안도 있을 것이다. 샘플이 될만한 사업을 민영화로 도입해 일정기간을 운영해 보면서 각각의 장단점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번 건도 마찬가지다. 파업은 노사가 서로의 입장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사용되는 최악의 수단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수익자인 국민불편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더욱이 수출시장의 중요한 수송로인 철도마비는 국익이나 국민들 모두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런 때에는 정치권이라도 나서서 중재를 해야 하고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어느 방향이든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중지를 모아야만 한다. 지금처럼 나 잘난 집단만 있는 형국에서는 파국밖에 얻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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