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일논단] 우리시대의 종교와 정치
[충일논단] 우리시대의 종교와 정치
  • 서중권 편집이사
  • 승인 2014.01.0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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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천주교 정의구현사재단을 시작으로 기독교와 불교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3대 종교가 모두 현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시국선언으로 떠들썩했다.
이에 정부와 여당이 강하게 반대하면서 새삼 종교와 정치가 논란의 중심으로 떠 올랐다.
여당에서는 현대사회의 정교분리 원칙을 강조하면서 세속과 떨어진 신앙에 몸담고 있는 사재들의 정치행동은 옳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근대국가로 발전하기 이전 유럽은 종교가 통치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교황의 권한이 강할 때는 유럽각국의 국왕을 교황이 결정하기도 하였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종교가 한정된 공간인 바티칸에서 자유롭게 종교활동을 하되 그 밖의 지역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도록 하는 일종의 신사협정을 맺는다.
오늘날에는 신자들이 바티칸을 성역으로 생각하며 세속과 차별된 공간으로 여기지만 사실 처음 바티칸과 나머지 이탈리아가 구분된 것은 종교와 사회를 분리시키고자 했던 무솔리니의 계획이었다.
방식이야 어떻든 현대국가로 발전한 민주주의국가는 기존의 종교와 정치를 분리해 냈다. 우리나라는 유럽보다는 더 오랜 기간 종교가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일제시대에는 기독교와 불교는 물론 대종교, 천도교, 증산도 등 여러 민족종교단체가 항일운동을 진행했다.
또한 70~80년대 한국의 민주화시기에는 서울의 명동성당이 주요 시위의 근거지가 되기도 하였다. 사실 전투경찰을 피해 명동성당에 숨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항상 시위대와 전투경찰이 대치하는 결전의 장소로 애용되었다.
당시 독재정권으로서는 한국천주교의 상징인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진입시킬 경우 미국과 서구사회의 강한 비난을 받게 될 것을 우려했었다. 90년대 한국의 민주화 이후로 비로소 한국의 정교분리는 사회적인 공감을 얻게 되었다.
특히 관료주의적인 전통이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종교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커졌다. 더욱이 2000년대 이후 복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정부정책에서 복지문제가 주요사안으로 다뤄지면서 종교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더욱 다양한 양상을 나타내게 된다.
결과적으로 종교는 신앙문제에만 국한돼야 한다는 것이 궁극적으로 종교의 사회적 역할로 간주될 수 있는 것으로 보였다. 성직자는 그 직책만으로 사회적인 존경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실존하는 현상을 제도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다.
제도적으로 보면 직책에 의해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이 적용되는 직종은 정치인, 교사, 경찰, 군인, 공무원 등 공공의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성직자는 사회적인 관습에 의해 보다 높은 도덕적 요구를 기대하는 것이지 제도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으레 성직자는 공직자 보다 높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다.
더욱이 성직자는 일반인의 생활에 보다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정기적으로 신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준비되어 있다.
다시 말해 종교는 정부보다 더 유리한 입장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종교가 서로 반목한다면 이는 큰 혼란을 야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또한 정교분리의 원칙이 강조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성직자 또한 법적인 자연인으로서 정치적 자유를 보장받는 국민의 한 사람이다. 결국 정부와 종교의 올바른 자리매김은 국민의 몫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성직자의 시국선언은 종교적 신분 때문에 언론과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한 사람의 정치적 소견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종교가 정치적으로 너무 가까우면 일부 중동의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와 같이 극단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정치와 종교는 가까워서도 안 되고 멀어서도 안되는 불가원불가근(不可遠不可近)의 관계가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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