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물류 및 협력업체 ‘中 북경 문화체험’
호남물류 및 협력업체 ‘中 북경 문화체험’
  • 최춘식 기자
  • 승인 2016.03.23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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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물류(회장 공균)와 협력업체 가족 51명은 중국 베이징 천안문과 만리장성, 이화원,  자금성을 관광을 위해 18일 새벽 4시 김포공항으로 출발했다.
김포공항에서 오전 8시 40분 비행기에 몸을 실은 이들은 기내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현지시간 10시 30분, 2500만의 인구가 살고 있는 베이징, 과거 중국의 역대 황제가 그 위상을 떨치며 대륙의 흥망과 성쇠를 주도했던 중국의 심장 북경에 첫발을 내딛은 것이다.
여행 첫날 자금성(紫禁城)을 돌아보는 일정이다. 자금성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자주색의 금지된 성이란 뜻이다. 중국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었던 궁궐, 자금성은 오랫동안 백성들은 드나들 수 없던 금단의 장소였다.
웅대한 자금성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황제와 그에 일족 고위 관리와 궁녀, 환관과, 시종들 그리고 간혹 사대외교에 나선 외국 사절단 정도이다.
오직 황제를 위한 공간으로 남으며 백성에게는 권위의 상징으로 군림하던 그들만의 공간이었다.
이런 공간이 자그마치 5세기 넘게 백성들의 출입이 금지되었던 금단의 땅이 이제는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됐다. 이제는 박물관이 되어 관광객이 황제의 공간에서 옷을 갈아입고 누구나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열린 공간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를 크게 변화됐다는 느낌을 주었다.
오늘날의 자금성은 당시 명나라와 청나라 두 왕조 시대의 수도였다.
자금성의 시작은 중국의 3대 황제 역락제에 의해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려 100만 명의 백성을 동원해 14년간 건설 공사를 통해 완성된 자금성이니 세상의 그 어떤 궁궐과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이를 반증하듯 자금성은 세계 그 어느 왕궁보다 넓은 공간에 수많은 건축물로 가득찻다. 또 그들은 건물 하나에 중국 사상과 전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자금성은 단순한 궁궐의 의미를 넘어 중국의 중세 과학 발전의 모태가 됐다. 자금성을 중심으로 중국의 천문학이 발전한 탓이다. 이는 황제가 하늘의 아들임으로 하늘을 관찰하는 곳 역시 황제가 기거하는 자금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또 우주의 중심인 북극성을 진한 자주색으로 알고 있던 중국의 권력자와 천문학자들이 하늘의 아들인 천자가 머무는 궁궐의 색을 자주색으로 지정한 것 역시 황제의 위엄을 나타내는 도구였을 것이다.
전체 면적은 72만 평방m 건축 면적만도 15만 ㎡에 이른다니 그야말로 거대한 건축물이다,
길이 960m, 폭 750m의 직사각형의 공간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들어서있고, 방의 개수도 9000여 개에 달한다,
이런 자금성은 단순한 성이 아닌 중국을 지배했던 사상적 토양을 그대로 담은 그릇이었고 자금성이란 건축물을 통해 하늘의 뜻을 백성에 전하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중간 매개체 역할을 담당했던 인류사의 보고다.

이튿날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돌아 봤다. 우스갯소리로 인공위성에서도 촬영되는 건축물로 손꼽는 곳이 중국의 만리장성이다.
폭 7m에 길이만 무려 6000㎞에 달하는 만리장성은 명나라 때 세워졌다. 산해관에서 출발하여 서쪽을 향하고 베이징과 단둥을 거쳐 남으로는 황화를 넘는다.
만리장성하면 진시황이 떠오르지만 진시황제가 처음으로 만리장성을 건설한건 아니다, 춘추전국시대 현재의 산둥지방에서 일어난 제나라가 중원에 있는 각 나라의 침략을 막아 내기 위해 축조가 시작됐다.
이후 연나라와 초나라 등 중국 역사에서 수없이 건국과 패망을 거듭했던 역대 왕조가 이민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계속해서 장성을 쌓은 것이 만리장성의 역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시황제도 중국 통일 후 북방 흉노족을 방어하기 위해 이미 건설됐던 각국의 성벽을 보강하고 연결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성을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됐다. 결국 이런 부담은 고스란히 장성 수축을 위해 동원되었던 백성의 몫이었다. 이 성을 쌓다 죽은 인부가 자그마치 150여 만 명이라고 한다.
만리장성의 또 다른 얼굴을 들여다보면 사상 앞에 무력한 백성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중국의 수많은 왕조들이 만리장성을 축조하는 것에 총력을 쏟은 이유는 북방 민족과의 대결 구도 때문이었다.
기마를 중심으로 하는 북방 민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명확한 국경선이 필요했다. 이런 정치적인 이유로 만리장성을 쌓아올리기 시작했다. 이는 결국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더욱 굳히게 된 계기가 됐던 것이다.
중세 까지도 중국인들에게 외적의 침입은 큰 사변이 아니었다. 거대한 국토를 소유하고 있기에 외적의 침입은 단순히 변방 오랑캐의 소요 정도로 치부했던 탓이다.
그러나 그 오랑캐가 만리장성을 넘을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만리장성을 넘어선 오랑캐는 더 이상 오랑캐가 아닌 중화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침략자로 여길 만큼 만리장성은 중국인에게 자존심을 지키는 선(線)이었다.
때문에 중국의 역사에서 만리장성은 끝없이 수축되고 보완됐으며 강화됐다. 오늘날 13억 중국인의 자존심의 표상이 됐다.
셋째날 여정은 천안문(天安門) 이었다
천안문은 자금성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1420년에는 명나라 영락년에 지어진 승천문이 있었는데 이후 소실됐고 청나라 때 재건되면서 천안문으로 바뀌었다,
1948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개국된 이래 문루 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국장(國章)이 장식되어 있고, 문루의 다섯 개 문 중앙에는 마오쩌둥 주석의 초상이 걸려있다,
문 앞에는 도랑이 있고 석조 다리가 다섯 개 걸려있다. 다리 양쪽에는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명나라 때인 1417(영락15)에 착공하여 1420년(영락18년) 에 완공됐다.
당시 지붕에 황색기와를 얹고 처마 귀퉁이가 하늘로 치켜든 패루가 눈길을 끈다. 이름은 승천문이었다. 문 앞의 대광장 주위에는 중앙관청이 모여 있고, 국가적 대행사 때에는 반드시 이 문이 사용됐다.
1919년 5·4운동 이래 중국인들의 시위집회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1949년의 중국정권 수립식도 여기서 행해졌다,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중 하나이며 중요한 정치적 사건의 현장이었던 곳 천상의 평화문 이라는 의미의 천안문은 베이징의 자금성으로 들어가는 네 개의 주 관문중 하나다
광대한 천안문 광장은 이 문에서 이름을 얻었다, 이 광장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880m, 동쪽에서 서쪽으로 500m 의 넓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시 광장이다.
천안문 광장은 이곳을 배경으로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로 유명한 장소이기도 하다.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이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 공화국의 탄생을 선언했다. 이후 광장은 공산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집단적인 친정부 집회와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명소가 됐다.
최근에는 저항 시위, 특히 민주화 운동의 장소로 유명세를 얻었다, 이러한 시위는 1989년에 정점을 이루었고 결국 당국에서는 무자비한 폭력을 가해 시위대를 진압한 현장이기도 했다.
서태후의 정치적 야망이 만든 이화원.
베이징의 이화원은 천안문 북쪽의 19㎞, 쿤밍 호수를 둘러싼 290㏊ 전각과 탑, 정자, 누각 등 복합공간이다. 1750년 청나라 건륭제(1711 -1799) 는 청의원을 지어 황실의 여름 별궁으로 쓰였다고 한다.
서태후는 1889년부터 죽을 때까지 이곳에 거주하며 황제가 죽자 5살 난 아들을 황제에 올려놓고 수렴청정을 했다. 서태후는 젊은 청년들의 양기를 흡입한다는 구실로 건장한 청년들을 불러들여 하룻밤을 같이하고 자신과 관계한 사람을 남에게 줄 수 없다며 죽였는데 그 수가 무려 1200명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서태후가 황제와 같은 권위를 느끼고 건설을 지시한 것이 이화원이라고 한다.
이화원의 건설은 단순히 중국의 역사에 국한 된 것이 아니다. 당시 일본과의 청일 전쟁을 치르면서 군자금마저 이화원 건축비로 전용되면서 전쟁 패배의 원인을 제공했다.
당시 조선에 출동한 청나라 군대는 이화원 건설자금으로 인해 수개월째 급여를 받지 못했다고 전한다. 때문에 군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병사들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조선을 약탈했다.
한 여인의 끝없는 야망과 과욕은 자신의 나라를 넘어 이웃 조선마저 피폐시켰다. 결국 자신의 나라도 망국을 초래했다.
이화원은 중국 대륙문화와 함께 지나친 노욕을 경계하라는 역사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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