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논단] 창의적 사회와 그 적들
[목요논단] 창의적 사회와 그 적들
  • 박창원 교수 충남도립대 인테리어패션디자인과
  • 승인 2016.06.01 18: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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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중세를 우리는 암흑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빛의 르네상스로 촉발된 근대로부터 서구는 변화하기 시작했고 개인의 주체적 인식이 강화됐다. 근대 서구의 개인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혁명의 과정을 겪으면서 강화되고 정치적 입장이 확고해지면서 창조의 시대는 시작했다. 각 개인 모두는 자기 인생의 주인이며 모두가 자기 인생이라는 기업의 주인이 됐다.
애플의 성공한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애플이 세계1위 기업이 된 것은 폰을 잘 만들어서가 아니다. 바로 폰 안에 욕망과 자존감으로 가득 찬 개인들이 자신들의 욕망과 자존감을 담아낼 생태계의 판을 잘 짰기 때문이다. 애플은 폰 판매량 세계 10위 밖에 있었을 때에도 폰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세계 1위였다. 바로 앱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애플의 앱 개발자들은 정부의 창조경제를 강조해서 앱을 개발한 것도 아니고 그러한 교육을 중점적으로 받아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그들에게 이익을 창출해줄 수 있는 생태계를 애플이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매우 단순한 것이었는데 앱 판매 이익의 70%를 개발자들에게 주고 30%만 애플이 가져가는 이익분배 비율을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개인은 이익이 확대되서 좋았고 애플은 수익을 조금 가져가도 많은 사람이 참가해 수익을 창출해주니 그 이익이 확대됐다. 반면 삼성은 세계 최고의 폰 기술력을 뒷받침해줄만한 경영적 창의성이 없었다.
창의력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창의적 태도를 가로막는 사회의 변화이다. 튀는 사람을 욕하는 사회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없다.
보건복지부 장관시절 유시민은 빽바지를 입고 국회에 등장했다가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의원들에 대한 모욕이라는 것이었다. 의원들에 대한 모욕은 국민에 대한 모욕이라고 판단돼 그는 마치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사람이 됐다. 하지만 그라고 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그가 정신 나간 사람이라서 그리한 것은 아니리라. 그는 무엇인가 정치의 변화를 위해 시도해 본 창의력을 발휘한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
창의는 실수를 발생하기에 항상 창의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비난의 화살이 된다. 지금의 정치 역시 가장 창의적 태도가 필요한 집단이다. 왜 정치권은 창의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은 국회선진화법에 걸 맞는 소통과 문제해결의 방식으로 그만의 창의를 나름대로 발휘했다.
그렇지만 창조를 제일의 가치로 내세우는 대통령은 배신이란 이름을 붙여 그를 내쫓았다. 우순 말로 국민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유승민은 창의적 자세 때문에 한 방에 인생 훅 갈 뻔 했다. 보통 창의는 귀찮지만 오랫동안 우리를 행복하고 편안하게 해준다.
펠프스는 근대 서구의 경제가 역동성과 포용성을 얻게 된 것이 가장 기본적인 단계의 경제 참여자들로부터 상상력과 에너지를 얻었기 때문이다라고 ‘대번영의 조건’에서 서술했다. 그는 이보다 자생적 혁신의 문화와 근대적 가치의 추구가 바로 대번영의 원천이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근대성의 핵심은 개인의 가치와 자유에 대한 철학적 태도들이다. 무역이 아닌 데카르트의 주체의 선언부터 시작한 개인의 창의력의 활기가 이 시기를 지배했다고 한다. 이 시기에 개인들은 도전하고 모험하며 일로부터 만족을 얻고 정당한 보상을 받는 좋은 삶을 가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러므로 근대의 경제적 성공이 증기기관이라는 단순한 기술력의 혁신에서 비롯된 것보다 다수 개인들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다수가 창의력을 가지고 놀 수 있는 창조적 판을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애플이 그랬듯이.
지금의 창조경제는 정치적인 태도로 인해 창조성을 저해한다. 그것은 바로 창조적 태도와 창조적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고 정부가 그것을 조성하고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지나친 확신과 과도한 법치적 강화시도에서 비롯된다. K-POP이 꼭 정부 지원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부산 국제영화제를 부산시 정부의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보면 부산 국제영화제를 망치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의 상황은 창조적인 젊은이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고 자신들의 삶의 존재를 창조적으로 완성해나가는 과정에서의 인생을 살아가겠다는 태도를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통제사회보다는 자유가 더욱 방임되는 사회가 됐을 때 가능한 것이다.
현 정부는 자식을 지나치게 아끼다보면 자식을 버리게 되는 부모처럼 창조경제를 지나치게 보살피려다 창조적 태도를 약화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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