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학과 치유
[기고] 문학과 치유
  • 이영일 순경 서산경찰서
  • 승인 2016.09.12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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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많은 상처를 지니고 산다.
그 이유는 상처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치유한다는 것은 곧 기억을 지우는 일이다.
그러면 기억은 어떻게 지울 수 있는가?
많은 학자들은 기억을 지우는 것은 창의적인 일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문학이야말로 치유에 적격이다.
문학적 창의성은 자발성에서 나오고 자발적인 순간 우리는 기억을 지울 수 있고 기억을 지우는 것이 곧 치유되는 과정이다. 외상이나 결핍, 장애, 갈등과 같은 상처는 곧 어떤 기억에 고착되어 한 가지 시각밖에 가질 수 없게 된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문학은 상처 치유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읽고 듣고 쓰면서 문학적 메타포는 창의성을 활성화시키고 기억을 지우며 상처를 치유한다. 브레인스토밍이나 독서, 글쓰기가 모두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살펴보자.
우리가 잘 아는 버전의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는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하는 개미를 주인공으로 삼고 베짱이를 몹쓸 상대자로 만들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버전의 이야기는 베짱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여름 내내 몸을 혹사한 개미는 병이 나서 모아둔 돈을 모두 치료비로 써 버리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그러나 개미가 일할 동안 노래나 부르고 놀았던 베짱이는 ‘음악중심, 뮤직뱅크’의 인기가수가 되었다.
어쩌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이런 이야기가 창의성의 본질인데 이런 다른 시각의 창조가 바로 치유의 본질이기도 하다.
상처치유는 놀이를 통하여 퇴행을 가능하게 한다. 놀이를 통해 인간은 다시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의력의 기원은 원시적 제의에서 보듯이 놀이에서 시작한다.
매일 반복되는 심리적 고착에서 우리는 진정한 창의적 역동성을 발견할 수 없다. 그러나 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다르다. 빗자루를 쥐어주면 아이들은 그 빗자루를 타고 심지어는 하늘을 날기도 하고 빨대를 코에 끼어 코로 주스를 마실 수도 있다고 답한다.
이것이 바로 상상력과 창의성의 본질이다. 그럴 때 우리는 과거의 기억에서 해방되며 상처가 치유된다.
그러나 가치평가와 판단, 해석은 이런 상상력을 죽인다. 아버지나 어머니, 선생님 말씀만 잘 듣고 살아가게 된다면 아이는 자기만의 고유한 독창적인 이야기를 배우지 못한다. 그 순간 그는 배운 것만 기억하고 아는 루트로만 다닐 것이다.
배운 것을 지워버려야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그 순간 상처가 치유되는데 그는 이런 능력을 키울 기회를 박탈당하고 마는 것이다.
그에 반해 시를 읽거나 글을 읽어 보라. 그러면 뇌가 활성화된다. 그리고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관찰하게 되고 새로운 것이 눈에 보인다. 이때 기억의 고착이 지워지고 상처가 치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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