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주 칼럼] 비판을 기도 제목으로 바꾸라
[양형주 칼럼] 비판을 기도 제목으로 바꾸라
  • 양형주 대전도안교회담임목사
  • 승인 2018.06.0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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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 법학과 교수인 에이미 추아는 그의 책 ‘제국의 미래’에서 큰 한 나라가 제국으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이고 중요한 덕목으로 관용을 말한다.
제국에서는 다양성에 대한 관용이 중요한데 이것이 부족할 때 제국은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우리 사회는 잘못한 사람에 대해 얼마나 관용적인가?
우리는 이런 사람에 대해 관용은 고사하고 천하에 아주 몹쓸 나쁜 사람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리고는 벌떼같이 달려들어 밤낮 괴롭힌다. 비난한다.

이 사회가 이렇게 된 것은 바로 당신 때문이라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없어져야 한다고 온갖 폭언을 일삼으며 이 사회의 온갖 원망을 그에게 뒤집어씌운다.
매주 우리는 뉴스에서 이렇게 낙인찍힌 사람들을 본다.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나와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사죄한다.

이런 이들은 얼굴만이 아니라 사생활과 주변 관계 등이 모두 온라인에 까발려지고, 원색적인 비난에 만신창이가 된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잘못한 사태에 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왜? 자신이 책임을 진다고 하면 자칫하면 그곳에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풍조가 우리의 일상생활에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태도로 스며든다. 우리는 주변을 향하여 비난은 서슴없이 날카롭고 아프게 잘 한다. 그러나 그 비난에 대하여 누구도 제대로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구약 성경의 모세는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야훼 하나님을 배교했던 것을 보았다. 하지만 큰 죄의 현실 앞에 그들의 잘못을 비난거리로 삼지 않았다.
사실, 모세가 할 수 있는 쉽고 편한 처신이라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맹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거대한 죄를 거친 비판으로 대응하지 않고 기도 제목으로 바꾸었다! 야훼께 나아가 이 비난받아야 마땅할 어마어마한 죄를 자신의 두 어깨에 홀로 지고, 이를 기도제목으로 바꾸었다.

기도 제목으로 바꾼다는 것은 성급한 비판으로 치닫지 않고 이 상황을 신의 판단에 겸손하게 내어 맡긴다는 뜻이다.
우리, 비판은 참 잘한다. 약점도 참 잘 집는다. 가까운 사이끼리도 참 아픈 곳을 콕콕 잘 찌른다. 그러나 그의 사정을 헤아리지 않고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을 향한 비판과 짜증이 나올 때, 우리는 이것을 기도 제목으로 바꾸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기도 제목으로 바꾸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다.

왜? 이 사람은 적어도 내 비판이 이 사람을, 이 조직과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의 기도는 기도하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상대방도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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