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태 칼럼] 태안의 눈물
[김남태 칼럼] 태안의 눈물
  • 김남태 편집국장
  • 승인 2008.07.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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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폭탄에 이은 생계터전의 초토화, 얼어붙은 손발을 호호 불며 어린 고사리손을 이끌고 매달린 복구, 전국에서 밀려드는 자원봉사의 손길 그러나 책임지지 않는 가해기업… 그리고 여름.
기름피해를 극복해가고 있는 충남 태안반도의 해수욕장에 본격적인 피서철을 맞아 관광객이 대거 몰려 주민들에게 위안이 되고있다.
이런 가운데 태풍이 물러 간 태안반도의 서해안 32개 해수욕장에는 휴일을 맞아 10만여명의 피서객이 운집해 여름더위를 시원한 바닷바람과 바닷물 속에서 녹이고 있다.
한때 절망앞에 놓여 절규했던 주민들에겐 이런 것들이 다소나마 위안이 될 수 있을까. 이날 서해안을 찾아온 피서객들은 예년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고유가 등 어려운 경제여건을 감안할 때 이 정도의 관광객도 적지 않은 것이며 기름유출 사고후 급감했던 관광객이 늘어날 조짐을 보인다는 점만 해도 작지않은 위안이 될 것이다.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관광객이 늘면서 대규모 펜션이나 리조트 등 주요 숙박시설의 예약률도 크게 높아졌으며 이런 회생의 기운이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을 듯 하다.
근흥면 연포리조트는 8월말까지 예약률이 80% 수준이며 기름사고의 직격탄을 맞은 만리포의 홍익대연수원도 내달 20일까지 예약이 완료된다고 한다.
지금 태안군내 주요 해수욕장에서는 내달 7일까지 ‘춤추는 바다! 태안’ 축제가 계속돼 해변축구대회와 해변놀이터, 열기구체험, 미니콘서트 등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망가진 삶의 터전 앞에 절망이 여전히 깊은 태안을 잊지 않아야 한다. 기실 사고책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할 정부와 가해기업들의 태도를 보면 지금의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금방 알 수 있다.
여전히 복구되지 않은 어장이며 태안을 기점으로 크고작게 생계를 일구어 온 그러나 망가진 희망이 태안에는 아직 없다.
이곳을 살리자는 듣기좋은 구호와 100만명이 넘는 구호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피해지역 주민들은 아직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곳이 많다.
기름폭탄으로 생계의 터전이 초토화됐지만 대통령은 그자리에 가보지 않았으며 엉뚱한 다른나라 지진피해지역을 갔으며 총리도 다른 일정을 핑계로 형식적인 방문에 그쳤던 곳이 태안이다. 뿐만 아니다. 가해자들은 침묵하고 모르쇠로 일관해 왔으며 대한민국의 기업인들의 양심을 버린 곳이 태안이다.
그런 그곳에는 지금 그동안 정부가 주도적으로 피해액을 산정하고 방제작업을 주도하지 못한 결과로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에 끌려 다니는 좋지않은 모양새가 형성되었으며 그 결과 여전히 춥고 배고픈 주민들의 한숨소리만 있다.
사고발생 이후 반 년 이상 방제인건비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피해지역 주민들은 삶의 희망을 잃어버렸고 피해지역에서는 방제인건비를 제대로 받지 못할 경우 폭동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엄중한 경고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다니던 직장에 7개월동안 봉급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를 온전히 견딜 수 있는 재간이 없을 것이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CEO 이명박’그러나 이를 다스릴 정부가 없다.
사기(史記) 혹리(酷吏)열전에는 혹독한 관리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나라 무제(武帝)는 중앙 집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지방호족 세력을 억압하는 정책을 채택했다. 당시 의종(義縱)이라는 사람은 왕태후의 총애를 받은 누님의 덕택으로 현령과 도위를 지내다가 남양 태수를 거쳐 다시 정양 태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남양태수로 재임하면서 도위(都尉)였던 영성(寧成)의 일가를 죽인 바 있어 이미 법 집행이 엄격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정양 태수로 부임하자 정양군내의 호족세력을 평정한 후 200여명의 범죄자들을 체포했으며 동시에 사적(私的)으로 감옥에 드나들며 죄인들을 면회한 사람들을 죄수 탈옥 기도죄로 구속했다.
의종은 이 자들은 사형수들을 탈옥시키려 했다고 판결하고 그날 중으로 400여 명을 전원 죽였다. 이후 군내의 호족들과 백성들은 춥지 않아도 벌벌 떨었으며(其後郡中不寒而慄) 교활한 자들은 알아서 관리에게 협력하여 공무를 도왔다.
몹시 두려운 상황을 형용한 말을 불한이율(不寒而慄)이라고 한다. 무더위 속에서 공포 영화를 즐기는 이들은 바로 이러한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무더위와 함께 태안으로 찾아드는 피서객들의 발길이 마치 8년을 기다려 8일간의 노래를 부르기 위한 매미들의 방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태안 해변을 적시는 바닷바람을 타고 8일간의 노래를 위해 8년간의 인고를 겪어 온 수많은 매미떼의 울음소리는 목마른 대지에 해갈을 기원하는 태안군민들의 타는 마음처런 들린다. 삶이 그러해도 매미는 살아있는 동안 열심히 그들의 노래를 부른다. 하지만 태안은 지금 노래를 부를 수도 또 눈물을 흘릴 수도 없는 ‘옥죈 불한이율’의 현장을 지금 이 순간도 겪고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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