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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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왕과 밧세바(2)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4.24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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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나뭇잎에 기록된 다윗왕이 병사 우리아를 불러 요압장군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내용. 우리아가 무릎을 꿇고 있다. 우리아는 요압장군에게 보내는 국왕의 편지 내용, 즉, 그를 전투가 치열한 전장터에 서게 하라는 국왕의 메시지를 모른 채 서한을 요압장군에게 전하므로 써 권력의 희생양이 되었다.
최고 권력자가 부정을 저지르고 이를 은폐하기 위한 방법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은폐를 위해 동원된 ‘그 치료법은 당초 발생한 병원(病源)을 더 키운 결과’로 나타났다.
밧세바의 임신소식을 듣고 다급해진 왕은 요압에게 서신을 보내 병사 우리아를 불러들이고 밧세바와 잠을 자게 하여 임신사실을 숨기려 하였다.
그러나 우리아가 요압 장군과 왕에 대한 충성심으로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수비병들과 잠을 자는 바람에 일차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밧세바의 임신을 은폐하기 위해서는 남편이 하루빨리 없어져야했고, 다윗 왕은 이차 계획으로 그녀의 남편을 치열한 전투에 배치하도록 했다.
그것도 우리아가 귀대(歸隊)하는 편에 명령서를 보냈다. 요압 장군은 그 의도를 이해하고 최전방에 그를 배치하였다.
결국 우리아는 전쟁에서 희생양이 되었고, 남편의 조문이 끝나자 왕은 밧세바를 아내로 맞게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 일이 있으니라”는 구절처럼 다윗 왕의 통치 후반기는 그 자식들과의 칼바람이 계속되어 오빠인 암논은 배다른 누이 다말을 욕보이고 그 누이의 친오빠 압살롬은 암논을 죽이고 쿠데타를 도모하여 부정과 반역으로 얼룩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필자는 국가지도자 다윗 왕의 권력 남용을 문제 삼아 밧세바를 변명하려고 한다.
첫째, 다윗 왕이 아름다운 밧세바를 보고 왕궁으로 불러들이는 과정에는 쌍방의 대화나 사랑스런 스토리가 오가는 장면이 생략된 채 권력의 의지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전개되었다.
밧세바의 생각이 담긴 부분은 다윗 왕에게 편지를 보내 잉태한 사실을 알린 것뿐이다.
이것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다윗 왕은 그녀를 보았고, 원했고, 사람을 보냈고, 그녀가 와서 동침했고, 집으로 돌아갔고, 잉태했다.
그리고 그녀는 임신했다고 서신을 보내왔다. 장군 요압이 왕의 서신을 받고 그를 전투에 보내 죽게 했다”는 방식으로 사건이 단선적으로 전개되었다.
여기에는 대화가 없다. 액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간단한 액션 속에는 너무 깊고, 커다란 의미가 생략되어 있을 뿐이다.
‘저가 그 부정을 깨끗케 하였으므로 동침했다’는 것은 밧세바가 한 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행사를 끝내고 몸을 청결히 하려고 목욕을 한 것이었다(레위기 15: 25-33).
그리고 왕궁으로 불려 들어갔다. 따라서 두 번째로 그것이 사건의 발단이 되었지만, 그녀가 왕을 유혹했느냐 하는 부분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엘리암이란 사람으로 역대기에는 암미엘로 나오며(역대상3: 5) 다윗 왕의 37인의 용사 가운데 한 명이다.
그녀의 할아버지 아히도벨도 다윗 왕의 모사(chief coun celor)였기에 왕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던 것은 분명하나 이들이 왕의 일정을 파악하여 시집간 딸에게 정보를 제공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즉, 남편이 있는 밧세바가 그 날 그 시간에 왕이 나오기를 기다려 목욕을 하려는 의도나, 정보력을 갖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다윗 왕의 왕궁은 시온 산의 유대 신전 옆 오른 쪽에 위치하여 두 번째로 높은 건축물로서 발코니나 옥상과 같이 전망 좋은 위치에서 시내를 내려다 볼 경우 가까운 일반인의 집 내부를 훤히 볼 수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당시 다윗 왕의 나이는 40세~45세 전후였으며 많은 부인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중년의 권태를 느끼며 국정에도 커다란 관심을 두지 못했다.
따라서 그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오는 사건을 만들어 한가한 시간을 보내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따라서 앞서 예로 들은 수잔나가 목욕하는 것을 장로들이 훔쳐본 경우처럼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의 건축물 구조가 정원에 목욕장을 만들어 마음먹고 까치발을 서게되면 쉽게 볼 수 있도록 설계된 건축공간이 한몫을 하였듯이, 밧세바의 집안 배경을 볼 때 집 뜰에 목욕장을 설치했을 수도 있다.
그녀가 집 옥상이나 정원에서 목욕을 한 것인지 혹은 일반 공중 목욕탕에서 했는지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지만 공중 목욕탕의 경우라 하더라도 남자들이 드나들 수는 없었다.
그녀가 부주의하고 의도하지 않게 몸을 노출한 점은 인정되지만, 왕이 여인의 알몸을 보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았고, 권력을 이용하여 왕궁으로 불러들인 ‘아이 게이트’ 사건이 예나 지금이나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그녀는 왜 다윗 왕과의 일을 남편 우리아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또 다윗 왕에게 항의나 저항을 하지 않고, 혼자서 고독하고 조용하게 기다리며 편지 한 장을 보내 모든 처리를 다윗 왕에 의존했을까?
그녀가 아이를 잉태하면서 남편 우리아는 희생양이 되었고, 그녀는 다윗의 떳떳한 아내가 될 수 있었지만 우리아의 손상된 체면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었을까?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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