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보기 신화와 미술의 오디세이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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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빅토리아 왕조와 고다이버의 부활(2)
  • 서규석 박사
  • 승인 2007.04.29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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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여왕은 1856년 앨버트 공에게 팽창하는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밀리타리 룩으로 보이는 자신의 사진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면적으로는 부군에 대한 고다이버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림사진은 하얀 승용마에 오른 빅토리아 여왕. 1838년 작품.
이와 같이 여왕의 선물은 고다이버 신화가 대중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통치기간에 고다이버 신화는 예술과 문학에서 신격화되었다. 물론 역사가들은 고다이버 신화를 하나의 픽션으로 주장하는 반대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여왕의 선물은 그 자체가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을 갖는 것이었다.
우선 생활패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빅토리아 여왕이 고다이버 상을 선택하면서 영국사회는 공적 생활과 사적인 생활간의 갈등과 긴장관계를 두 가지 방식으로 처리하게 만들었다.
첫째는 영국사회의 인구가 갑자기 증가하고 증산계급이 성장하면서 가정에서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특히 결혼한 부부들은 외부로부터 엿보거나 침입하지 못하도록 욕실과 침실, 드레스 실을 구분하여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침실과 거실의 구분이 오늘날에야 하나의 기본이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러한 구조의 주택을 가진 자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실내생활은 근접성을 띄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보호가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주택에서의 생활공간을 만들고 커튼, 어둠, 담요 등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사생활 공간을 보호하려는 시도들이 도입된 것이다.

▲고다이버.에드윈 랜시어(1865년 작)

둘째, 빅토리아 여왕이 앨버트 공에게 부친 서신은 가정과 사적 영역은 여성이, 비즈니스와 공적 세계는 남성이 지배한다는 사고를 확인시켜 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도 공적책임을 질 수 있으며, 남성도 가정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존 러스킨(John Ruskin, 1819-1900)과 같은 일부 지식인들은 여왕이 잠자고 있는 고다이버의 혼을 깨워 여성을 공공의 영역으로 불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심지어 위험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여성이 문밖을 뛰쳐나가는 상황이라면 질서는 확보하기 어렵고 사랑스러움도 없어진다는 것이 그 반대이유였다. 러스킨은 ‘참깨와 백합(Sesame and Lillies, 1865)’에서 중산계급 이상의 여성들은 공적인 영역에 참여하되 박애주의를 실천하며 사회적으로 기여해야 한다는 소극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실제로 주말이면 사회적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증가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고다이버의 혼을 일깨우는 것은 공공의 질서와 사회적 안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빅토리아 여왕을 매개로 고다이버 신화는 역설적으로 여성을 사적, 가정의 공간으로부터 공공의 영역으로 불러내는 계기를 만들었다.
공적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빅토리아 여왕은 국가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지위에 있으면서도 부군에게 고다이버 상을 선물함으로써 사회의 전통인 여성의 역할에도 공감을 표시한 것이다.
영국여왕의 이런 가치관과 더불어 빅토리아 조의 여성에 대한 가치관은 고다이버와 기네비어 왕비에 대한 대비로서 란슬럿과 그를 사랑하는 비운의 여인 엘레인과 샬럿의 아가씨와 같이 거친 세상에서 비켜나서 하나의 성에 갇혀 희생하는 여인을 주로 여성의 역할모델로 인정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서규석 씨는 중앙대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자치경영개발원에 재직하면서 대학에서 문명사를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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